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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는 15세 때 교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 삭발을 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몸이 약해서 다른
성직자들과 달리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했었죠. 그 때문에 아버지께 계속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그후 비발디는 여자 양육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있게 되었습니다. 음악교육을 중점으로 하는 여자 양육원에서 바이올린
지도는 물론이고 관현악단 지휘도 맡아 했으며 그들을 위해서 여러 곡을 작곡하기도 하였죠. 오늘날에 비발디의 곡이 아름답지만
나약하다는 평을 받는 것도 바로 여자아이들을 위해서 작곡한 곡이 많다는 점 때문일 꺼에요.
성직자가 된 후에도 비발디는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해서 미사도 걸핏하면 빼먹고 성당의 으슥한 곳으로 가서 연주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직자로는 좋은 평을 얻지 못했어요. 또한 비발디는 악상이 떠오르면 어디론가 사라져서 작곡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비발디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미사곡, 모테토, 오라토리오 등 교회음악을 많이 썼습니다. 또한 현을 위한 협주곡을 400여곡을
썼으니 엄청난 양이지요?
이런 곡들은 후에 고전파인 모짜르트, 베토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비발디의 주요 작품
사계, 화성의 영감, 바이올린 소나타 12곡, 실내소나타 12곡, 여러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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